러닝 시스터후드 | D라인 러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러너

기사작성 : 2021-02-17 16:41

2020년 12월호의 키워드는 ‘임신’과 ‘러닝’으로, 달리는 임산부 또는 임산부 러너인 김도인과 이주영을 스튜디오 촬영과 함께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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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러닝’은 달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진지하게 고민해봤을 주제임이 분명하다. 인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달리기가 결혼에 이어 임신으로 인해 어떠한 변화의 국면을 맞이할지, 그 두 세계는 함께 갈 수 있는 건지, 겪어보지 않았기에, ‘이번 생에 임신은 처음이라서’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임신 중 달려도 괜찮은 건지, 괜찮다면 어디까지 괜찮은 건지, 출산 후 육아와 러닝은 또 어떻게 병행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 러너들을 위해 준비했다. 이 모든 고민을 먼저 하고 방법을 찾아 삶에 적용함으로써 자신만의 ‘D라인 러닝 라이프’를 멋지게 구축했던 ‘언니’들의 다정다감한,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러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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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부였던 달리기
두 분 모두 둘째 임신 중인데요, 얼마나 됐나요? 첫째는 지금 얼마나 자랐죠?
도인 2018년에 첫째 딸을 낳았고 현재는 둘째 임신 10개월차, 벌써 마지막 달에 접어들었어요. 11월 말에 출산 예정입니다.
주영 첫째 딸은 2018년 1월에 출산했고요. 둘째는 이제 8개월차에 접어들어요. 2021년 2월에 출산 예정입니다.

달리기는 언제 어떻게 처음 시작했나요?
도인 남편이 2015년에 ‘Men’s Health 어반애슬론’에 같이 나가자고 했던 게 시작이었어요. 대학교때 유도동아리 활동을 해서 몸 쓰는 게 처음이 아니긴 했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운동해보니 재밌었고 경기 결과도 좋아서 이듬해 같은 대회에 한 번 더 출전했죠. 그걸 계기로 2016년 말부터 ‘휴먼레이스’ TR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주영 중2 때 아버지 설득으로 출전했던 ‘영월동강마라톤’ 10km가 첫 달리기였어요.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 제가 22살 때 아버지 권유로 또 한 번 ‘가평마라톤’ 10km에 출전했는데 그때 4위 입상을 했죠. 달리기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달리기에 빠지게 됐어요. 그러다가 1년 뒤 2012년 춘천 마라톤 첫 풀코스에 도전해 5시간 넘게 걸려 완주했어요.

그렇게 시작했군요. 두 분 다 꽤 진지하게 달리기를 하신 걸로 알고 있어서 더 재미있네요.
도인 2017년, 그때 제일 재미있게 뛰기도 했고 심취해서 뛰던 해였어요. 일하면서 번아웃이 왔는데 러닝이라는 취미를 새롭게 찾아서 일 외에 다른 것에 몰두할 수 있었죠. 마침 또 ‘필 레이디(Feel Lady)’라는 러닝 크루 활동을 시작하면서 마라톤에 많은 동기부여를 얻었고 운영진으로 활동하던 중 ‘아디다스 러너스 서울(AR)’ 페이서로도 발탁됐어요. 러닝 관련 대회나 이벤트는 거의 다 참가했고 대회에 나갈 때마다 PB를 찍었죠.
주영 첫 풀코스를 완주하고 나니까 목표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해인 2013년 ‘중앙마라톤’을 목표로 잡고 6개월 동안 기록 경신을 위해 노력했어요. 퇴근하면 바로 트랙 훈련에 임했고 가끔은 출근도 달려서 했어요. 살이 13kg이나 빠지더라고요. 그 결과 두 번째 풀코스 마라톤에서 3시간 7분이라는 기록을 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4년 뒤인 2017년 ‘동아마라톤’에서는 1분 단축한 3시간 6분을 찍었고요.

정말 놀랍네요. 당시 훈련 루틴이 궁금해져요.
주영 일주일에 6일은 무조건 달리고 하루는 쉬는 패턴으로 훈련했어요. 풀코스 준비 기준으로 하루 조깅 10km 이상, 주말에는 30~40km씩 달렸고요. 이천에 살 때였지만 잠실, 하남, 남한산성, 인천 등 훈련하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어요. 달리기가 인생의 전부였죠.
도인 저도 평일, 주말 할 거 없이 주 1~2회는 ‘AR’ 페이서로 참여했고 주 1회는 러닝 크루에서 훈련했어요. 물론 주말에는 빠짐없이 대회에 출전했고요. 러닝 모임이 많아서 주영씨처럼 개인 훈련에는 집중하지 못했지만 대회가 곧 훈련인 상태로 계속 뛰었어요.(웃음)

그때가 달리기 이력의 최고였던 시기였겠군요.
주영 그렇죠. 거의 정점에 이른 몸으로 2018년, ‘가을의 전설이 되자’고 다짐하면서 ‘춘천마라톤’ 서브3를 준비했죠. 그런데 그해 5월에 아윤이를 임신했어요. 그러면서 모든 게 멈춰버렸어요. (눈물을 글썽이며) 그때 생각하니 눈물 날 거 같네요.
도인 저도 그쯤인 것 같아요. 2017년 말, 임신 4주차였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첫 풀코스를 뛰고 2주 뒤에 하프코스 PB를 냈죠. 그러다가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임신이라니? 임신 사실을 알고 나니 지금처럼 치열하게 달리기에 전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쉽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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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하는임산부
두 분 모두 계획에 없이 임신이 된 거군요. 임신했다는 걸 알고 나서 기분이 어땠나요?
도인 울었어요.(웃음) 절망의 감정이 아주 없다고 말할 수 없었어요. 당시 아이를 막 좋아하지도 않았고 아이 갖기를 간절히 원하지도 않았거든요. 막연히 언젠가 가질 거라 생각만 했죠. 갑자기 걱정이 되더라고요. 일은 어떡하지? 운동도, 달리기도 앞으로 못하겠네? 혼란스러웠어요.
주영 저는 결혼하고서 세 달 정도 임신 준비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소식이 없었죠. 남편과 함께 자연스럽게 생기길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일상에 전념하던 가운데 불현듯 임신을 한 거예요. 기다렸던 임신이었으니 행복했어요. 하지만 달리기를 생각하니 걱정이 없지는 않았어요.

임신 직후 일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주영 첫째를 임신하고 22kg이 쪘어요. 첫 아이였고 왠지 무조건 조심해야 할 것 같아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어요. 또 엄청 잘 먹었죠. 그때는 주말 지나고 월요일에 SNS 보기가 힘들었어요. 피드에 대회 사진, 입상 사진만 계속 올라오니까. 그런데 저는 그럴 수 없으니까.(웃음)
수인 공감해요. 저는 임신하고도 달리기를 계속 병행해서 살이 많이 찌지는 않았지만 저와 비슷하게 달리기를 시작했거나 기록이 비슷한 친구들과 비교해 제가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고 심지어 뒤로 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력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막막했을 것 같네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주영 첫째 가졌을 때는 임신 중 운동에 관련된 정보도 없고, 임신 자체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에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둘째 임신 후 임산부 운동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운동을 꾸준히 해왔던 산모라면 가볍게 운동을 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래서 11주에 접어들 때쯤 하루 30~40분씩 6~8분 페이스로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달리고 나면 느껴지는 상쾌함이 정말 좋았죠. 주변에서야 뛰지 말라고, 무조건 쉬라고 했지만 내 몸은 내가 잘 아니까요.
도인 저는 임신 소식 알고부터 낳기 일주일 전까지 하루 3~4km, 페이스는 7분에서 7분 30초 정도로 달렸어요. 주변 사람들의 뛰지 말라, 집에서 쉬라는 말이 듣기 싫었어요. 우리나라 인식 자체가 임산부를 환자 취급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 말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저 스스로 확신이 있어야 했기에 임산부의 달리기에 관한 국내외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공부했어요.

도움이 될 만한 유의미한 사례가 있었나요?
도인 국내는 거의 자료가 없었고 카더라 통신이 대부분이었죠. 임산부의 달리기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고요. 그 가운데 해외 사례, 특히 해외에 사는 한국인의 사례가 큰 도움이 됐어요. 아무래도 동서양인 조건은 다르니까. 임산부의 운동에 관해서는 미국, 캐나다 연구팀을 중심으로 증명이 된 연구가 많아요. 특히 국제 산부인과 학회지에 게시된 2019년 캐나다 임산부 운동 가이드 라인에 따르면 조기진통, 고열, 임신 중독증 같은 임신했을 때 절대 안정이 필요한 금기그룹을 제외하고 임신 초기를 포함 임신 기간 전체에 오히려 적당한 운동(주 3회 이상, 주 150분 이상의 근력 및 유산소 운동)을 하라고 권장하고 있어요.
주영 운동을 꾸준히 해왔고 건강하게 임신한 사람이라면 임신을 하고 나서도 운동을 지속하는 게 저도 맞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임신했다고 모든 활동을 멈춰버리면 산후에 건강하지 못한 몸과 마음이 되어 있을 거예요. 임신 전처럼 운동할 순 없겠지만 그때보다는 강도를 낮추고 (이를 테면 최고 100퍼센트를 썼다면 임신 후에는 한 50~60퍼센트 정도) 자신의 컨디션을 돌봐 가면서 즐겁게 운동하는 건 임산부에게 결코 나쁠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엄마가 행복하고 즐거워야 뱃속의 아이도 행복하고 즐겁지 않을까요? 엄마의 건강함과 행복함이 아이에게도 전달될 거라 생각해요.

이렇게 배가 크고 무거운데 달릴 때 안 힘들었나요?
도인 힘들죠. 그래도 뛰고 났을 때가 더 좋으니까. 또 막상 달리기를 시작하면 힘든 게 크게 안 느껴져요. 달리기를 마치고 났을 때 드는 상쾌함, 성취감은 다른 어떤 운동을 해도 얻어지지가 않아요. 첫째 때 노하우가 생겨서 지금도 임신 중에 무리 없이 달리기를 병행하고 있어요.
주영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아서 둘째는 자연분만을 시도할 예정인데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산모도 살이 많이 찌지 않아야 하고 건강해야 해요. 첫째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임신 중에도 달리기를 병행해서 얻는 게 더 많으니까 계속 달리게 돼요.

임신 중 달리기라니,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아요.
도인 첫째 임신하고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심조심 대회에 많이 출전했는데요. 임신한 배가 뒤에서 보면 잘 안 보이니까 등 뒤에 항상 ‘지금 몇 개월 아이가 함께 뛰고 있다’는 메모를 붙이고 뛰었어요. 그럼 그 메모를 본 모든 러너들이 달리면서 저를 응원해주더라고요. 또 한 번은 임신하고 6개월 됐을 때 친정엄마와 마라톤 대회에 나간 적이 있어요. 엄마, 저, 그리고 뱃속의 아이, 3대가 뛰는 거잖아요. 이 내용으로 신문기사도 났었어요. 이런 특별한 경험들은 그 시기가 아니면 다시 겪지 할 거란 걸 알기에 무척 소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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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일상의 균형 잡기
출산하고 나서는 어떻게 몸과 마음을 돌봤는지 궁금해요.
주영 출산하고 6개월 됐을 때 남편이 저에게 하루 2~3시간 애를 봐줄 테니 밖에 나가서 걷든 뛰든 뭐라도 하라고 하더라고요. 육아에 전념하느랴 잠깐 잊고 있었던 달리기를 그때 다시 시작했어요. 남한산성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어서 올라가기까지 1년이 걸렸죠. 체력도 올라오고 살도 빠졌어요. 기록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고요. 그러면서 지난해에는 바디 프로필 촬영도 했어요.
도인 임신 중에도 달리기를 계속 병행한 탓인지 다행히 출산 후에도 회복이 빨라서 한 달 후에 러닝복을 다시 입을 수 있었어요. 임신 전보다 더 건강한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달리기 외에도 요가, 필라테스, 체형교정 등 노력을 많이 했죠. 반면에 제가 운동할 시간을 확보해주는 동안 남편은 오히려 살이 많이 쪘다는 게 함정이지만.(웃음)

달리기에 복귀하는 데 남편의 배려가 있었군요.
도인 물론이죠.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육아와 가사는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 또한 내 일이라고요. 그래서 출산 후 빠르게 달리기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첫째에 이어 둘째를 가질 생각을 할 수 있게 여유를 준 것도 남편이 만들어준 것일 테고요.
주영 저도 마찬가지예요. 육아, 가사, 운동 모두 신랑과 조율해가면서 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남편이 토요일 장거리 훈련을 할 때 제가 육아를 하고, 저는 일요일에 자유 시간을 갖고. 도인씨도 저도 남편이 함께해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달리기는 엄두도 못 내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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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외조가 두 분을 자유롭게 해준 건 분명하네요. 일도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던가요?
주영 저는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주 양육자인 엄마나 아빠가 아이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경력 단절도 걱정이 되죠. 더욱이 곧 태어날 둘째도 양육해야 할 상황이니까 언제 어떻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전처럼 하루 9시간, 어딘가로 출퇴근해서 해야 하는 일은 이제 안하고 싶어요. 내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첫째를 키우면서 준비한 것이 보육교사 자격증이에요. 어렸을 때 꿈이 고아원을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 기대돼요.
도인 저는 주영씨처럼 전업 주부는 아니지만 회사를 다니지는 않고요. 제 일을 하고 있는데요. 대학교 때 의상학을 전공해 패션 MD로서 오래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15년에 캐주얼 브랜드를 런칭했어요. 그러다가 달리기를 시작하고 제가 속한 러닝 크루 웨어를 제작할 기회가 생겨 제가 입고 뛰고 싶은 옷을 직접 만들었죠. 그때 크루 사람들의 옷에 대한 만족도가 워낙 높아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지금은 정식으로 러닝 크루 웨어도 주문받아 함께 제작하고 있어요.

다행이에요. 두 분 모두 지금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계시네요. 그럼에도 달리기를 생각하면 조급한 마음도 들 거 같아요.
도인 저는 남편을 보면서 의연한 마음을 갖게 되는데요. 남편이 초등학교 때 2~3년 정도 유도 선수생활을 잠깐 했어요. 그리고 대학교 유도동아리를 통해 다시 유도를 시작한 거죠. 아마추어 유도인이지만 20년 가까이 유도를 했으니 웬만한 지도자급 실력이거든요. 그 과정을 저는 오랜 연애 시절, 결혼하고 지금까지 옆에서 쭉 지켜봤어요. 기량이 올라갔다가, 다쳤다가, 부상도 겪다가, 슬럼프도 왔다가, 수술도 했다가, 다시 좋아졌다가. 그러면서 알게 됐어요. 당장 눈 앞의 기록이나 성과에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걸. 지금도 유도라는 운동 앞에서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심취해 즐기는 남편을 보면 저도 달리기를 오래 건강하게 즐겁게 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돼요.
주영 사실 마라톤이 결코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잖아요. 길게 멀리 보면서 다치지 않고 즐겁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면 상관없겠지만 만약 계획이 있다면 짧게는 1~2년, 길게는 3~5년, 이 시기는 언젠가 꼭 거치고 겪어야 할 시기라는 걸 아니까 장기적으로 보고 있어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다시 필드에 복귀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요. 또 마라톤이 도리어 구력이 있어야 잘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점도 위로가 돼요. 여성 마라토너로서 35세에서 50세가 저는 전성기라고 보고 있거든요. 그때가 되려면 아직 여유가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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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는 다른 종류의 기쁨
이 모든 고충을 겪으면서도 바꿀 수 없는 임신과 육아의 기쁨이 궁금해요.
주영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남편과 저의 가정 생활이 단조로웠을 것 같아요. 남편과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미친듯이 달리기에 몰두하는 인생도 좋았겠지만 오히려 아이가 있어 남편과 저 사이가 더 돈독해지지 않았나.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렇게 나로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달려야겠다고 생각해요. 2017년, 제 러닝 인생 최고 정점에 첫 아이를 가졌는데 만약 그때 안 가졌으면 어땠을까, 이제는 아찔하기까지 해요. 아이들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더 잘해주고 싶어요.
도인 남편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이전의 내 인생이 없었던 다른 무언가가 새롭게 들어오는 거잖아요. 마치 마라톤에 나가 PB를 세우는 것처럼.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나의 인생도 바뀌면서 더 충만해지는 느낌이랄까요. 이제는 없으면 너무 불완전해요. 이전의 자유롭던 삶도 무척 소중하고 행복하죠. 하지만 임신과 육아로 인한 변화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행복이에요. 물론 지금도 혼자 쉬고 싶을 때가 당연히 있죠. 이전의 생활이 그리울 때도 있고요. 하지만 그 결핍에 몰두하게 되지 않아요. 다른 기쁨, 다른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지금도 가족이 보고싶어요.(웃음)

언제 내가 스스로 강하다고 느껴지나요?
주영 남편이 볼일이 있어 하루 종일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날이었어요. 저는 집에서 아이한테 미디어를 보여주지 않는 대신 저만의 방식으로 놀아주고 있거든요. 그러니 더 힘들죠. 그러다 저녁쯤 친정 부모님이 잠깐 집에 와주셨어요. 1~2시간 아이 봐줄 테니 좀 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뭘 했는지 아세요? 러닝화 신고 바로 뛰러 나갔어요. 부모님이 오시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풀리니 당연히 쉬고 싶고 자고 싶었죠. 그런데 그 와중에 뛰어야 피로가 풀릴 것 같더라고요. 뛰고 와서 아이 목욕시키고 잠들기 전까지 수십권의 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잠들고 나서 생각해보니 육아에 가사에 거기다 운동까지 혼자 해낸 제 자신이 문득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인 아이 낳고 3개월 정도 됐을 때 멈춰버린 커리어가 걱정돼 슬슬 외부 업무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거든요. 저도 저지만 아기도 몸을 제대로 못 가눌 때인데 아기를 아기띠에 메고 유모차에 싣고 서울이며 지방이며 왔다 갔다 했죠. 그런데 참 아기 데리고 어디 가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계단은 왜 이렇게 많은지. 엘리베이터라도 고장 난 날에는 눈앞이 깜깜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와중에 꿋꿋이 일하러 다니고 그러면서도 러닝 크루까지 새로 만들어 달리기도 다시 시작하고. 그때 생각하니 이번에는 제가 눈물 날 거 같네요. 제가 생각해도 참 지독한 시간이었요.(웃음)

대단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시간이네요. 이토록 대단한 선배로서 미래의 달리는 임산부들에게 조언 부탁해요.
주영 주변의 결혼한 여성 러너들이 걱정하는 게 공통적이에요. 임신은 하고 싶은데 그러면 달리지 못할까 봐, 예전처럼 달리지 못할까 봐. 하지만 만약 아이를 갖고 싶다면 1년이라도 먼저 낳고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어요. 같은 상황이라도 우울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우울해지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 술술 넘어가게 되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하면 할 수 있는 거고 못한다고 생각하면 못해요. 오히려 지금이 더 강해진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임신 중에 달리기했던 엄마는 출산하고도 뭐라도 해요.(웃음)
도인 임신한 상태에서 달릴 때 뱃속의 아이와 교감하는 건 누워서 교감하는 것과 또 전혀 달라요. 나 혼자 뛰고 있다는 느낌보다 함께 뛰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요. ‘엄마 오늘 뛰고 싶은데 도와줘!’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마스크 안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기도 해요. 나만 알고 있는 굉장히 특별한 교감. ‘달리는 임산부’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거든요. 딱 그때뿐이죠. 임신한 여자들은 많지만 달리는 임산부는 많지 않고요. 다시 오지 않을 10개월, 그 시간을 헛되이 원망하고 후회하며 보내지 않고 충분히 즐기면서 보냈으면 좋겠어요.

어떤 러너가 되고 싶나요?
도인 오래오래 달리기를 사랑하는 사람. 빨리 달려서 얻는 성취도 있지만 저는 그보다 내 몸을 부상 없이 바르게 잘 쓸 줄 아는 러너로 남고 싶어요. 그리고 임신 중의 달리기에 관해 제가 그동안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와 가이드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요. 옷을 잘 만든다는 말에는 사람의 몸과 움직임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질병이나 장애로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아직은 막연하지만 옷과 운동이라는 수단을 통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주영 첫째 아이 임신 전 목표가 마라톤 서브3였는데 이제는 그런 목표가 조금은 무의미하다고 여겨져요. 목표를 설정해 이루고 나면 이후 또 다른 높은 목표가 생기는데 그 사이의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또 그 높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투자하면서 잃어야 할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고요. 지금 저의 목표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달리는 여성으로서 부상없이 오래오래 달리는 거예요. 부모님이 20년 가까이 마라톤을 하셨고 남편도 마라톤을 하다가 만났으니 우리 아이들까지 언젠가 3대 마라톤을 완주하면 좋겠고요. 얼른 코로나 상황이 좋아져서 주말마다 온 가족이 마라톤 여행가는 날이 왔으면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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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by 장보영(Boyoung Jang)

<러너스월드 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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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월드 코리아>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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