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서브3 포토그래퍼는 처음이지?

기사작성 : 2019-08-12 16:26

불확실한 미래를 날려버리는 어수하의 놀라운 달리기 스토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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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하는 실제로 보면 키가 꽤 크고 덩치가 있다. 허벅지도 굵다. 서브3 포토그래퍼에 어울리는 체격을 가졌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 인간의 종류를 이런 식으로 나누는 기준은 참 다양하다. 그 기준점은 너무나 다양해서 여기서 좋은 사람이 저기에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어딘가에선 좋은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혼란스러운 인간들의 세계! 하지만 러너들의 세계에선 좀 다르다. 그 기준이 나름 명확한 셈이다. 그러니까 달리기 기록이 좋으면 ‘절대적’으로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을 판단하는데 데이터가 우선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데이터가 이 지면에 실릴 수 있는 사람을 고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늘 사람을 수치화해서 판단해야 하는 에디터의 고충을 독자들이 헤아려주길 바라는 뜻에서 이렇게 밝힌 것도 있지만, 어수하가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 꼭지에 실리게 됐는지 여러 사람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비인간적인 에디터의 행태를 고백하게 됐다. 그래서 어수하는 왜 여기에 등장하게 됐을까?

먼저, 딱 봐도 어수하는 ‘이상한 사람’이다. 이름부터 특이하지 않은가? 한자로 그의 이름은 물고기 어(漁), 빼어날 수(秀), 물 하(河)다. 풀이하면 물 속의 빼어난 물고기. 아무래도 수상한 이 사람이 러너들의 세계에선 그래도 ‘대단한 사람’으로 통한다. 기록을 볼까? 10K, 00:36:54. Half, 01:28:40, Full, 02:58:40. 게다가 그는 마라토너들의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픽터벌(Picterval, 픽처와 인터벌의 합성어, 그의 SNS 계정 이름이다)’로도 주위에 꽤 알려져 있다. 일명 그는 서브3 포토그래퍼다(그렇다고 그가 늘 카메라를 들고 뛰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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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하가 즐겨 찾는 러닝 코스는 서울의 남산. 여기서 트레일과 로드를 모두 달린다. 그는 트레일 러닝에서의 기록도 좋다.


특이한 이름 덕분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별명을 달고 살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어서와’다. 단지 이름만 변형시킨, 그 의미가 어수하가 가진 많은 특성과 단 한 개도 연결되지 않는 이 별명이 20대 중반쯤에 이르러 ‘어포토’로 바뀐다. 그가 사진가로 이름이 알려지면서다. 그러면 그는 왜, 어떻게 카메라를 들게 됐을까? 이것에 대한 답은 그가 왜 달리기를 하게 됐는가에 대한 답과 상당부분 겹친다. 그동안 어수하의 행적을 살펴보면 대충 알 수 있다.

어수하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강원도 삼척에서 잠깐 살았지만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부산에서 지냈다. 이때 아버지와 함께 산에 자주 올랐는데, 이것이 지금 체력의 바탕이 된 것 같다고 그는 설명했다. 아무튼, 체력이 좋아서 그는 놀기도 잘 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주 4일(목, 금, 토, 일)을 주구장창 놀았다. 이때 그의 손에는 항상 카메라가 들려 있었는데, 메모리카드 안에는 언더그라운드 밴드나 힙합 뮤지션들 혹은 클럽 DJ들의 공연 모습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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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게을러지려는 자신과 타협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부지런하려고 항상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그는 대체로 표정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다.


“본가에 가면 사진첩이 굉장히 많아요. 아버지의 젊었을 때 취미가 ‘사진’이었거든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되기까지 찍은 사진을 모두 인화해서 정리하셨죠.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사진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요.”
그렇게 어수하는 정신없이 놀다가 돌연 학군단(ROTC)에 지원, 일찍 군생활을 시작했다. 180도 달라진 생활 패턴에도 그는 잘 적응했는데, 그 중에서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체력검정에서 달리기를 즐겼다. 어느 날은 3km 달리기 측정을 하면서 ‘러너스 하이’를 맛보기도 했다. 자대 배치를 받고서도 마라톤을 좋아하는 대대장 덕분에 달리기를 계속 했다. 그 재미를 잊지 못해 전역을 한 다음 ‘마라톤 클럽’을 찾았지만 클럽 회원들은 그가 어리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이 일이 계기가 된 건 아니고 이때 이후 그는 여러모로 바빠 달리기를 잠깐 멈춘다.

제대 후 복학했지만 전공을 바꿨고, 졸업을 하자 마자 부산의 한 무역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회사 생활이 좀 힘들었다. 업무시간 외에도 수시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건강도 악화됐다.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과 같은 꼴이어서 그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자주 울었다. 일을 하면서 얻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서브컬처’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풀었다. 물론 사진도 계속 찍었다.
“이것 말고도 여러 스포츠 활동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그게 당시 제 삶에서 탈출구 역할을 했고요.” 결국 그는 그 ‘탈출구’를 통해 다른 세상으로 나온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스 포토그래퍼로 나선 것이다. 하지만 쉽진 않았다. 이후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해졌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방법이 없었다. 하던 데로 카메라를 들고 계속 사진을 찍는 수 밖에는.
“서핑을 배울 기회가 있었어요. 서퍼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모습과 일상을 사진에 담게 됐죠. 이것이 스포츠 촬영에 집중하는 계기가 됐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국내의 한 러닝 브랜드와 콘텐츠를 진행하게 되면서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어수하는 달리기와 관련된 일을 맡고 서울로 상경했다. 그러면서 전 국가대표 육상 선수(박명현)를 알게 됐고, 이를 계기로 그가 감독으로 있던 마라톤 클럽(런닝 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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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달릴 때는 다르다. 웃는 표정이다. 그는 확실히 달리기를 좋아한다.


어수하가 달리기를 할 때 즐겨 찾는 장소는 남산이다. 그는 대체로 ‘목멱산방’에서 시작되는 북측순환로를 왕복하는데, 그를 따라 달리면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헉, 헉! 지금 이게 몇 분 페이스죠?” “5분 40초 페이스요.” 원래는 그가 땀에 흠뻑 젖기를 바랐다. 그의 얼굴과 티셔츠가 땀으로 범벅이 되면 그때 인터뷰용 사진을 찍을 계획이었다(얼굴도 잔뜩 찡그린 채 정말 힘들게 뛰고 있는 그런 실감나는 이미지!). 하지만 세 바퀴(우리는 북측순환로의 중간을 잘라 원형으로 돌았다)를 달려도 그는 멀쩡했다. “이제 땀이 좀 나오나요?”라고 몇 번을 물어도 “전 원래 땀을 잘 안 흘려요”라고 답할 뿐이었다. 그냥 포기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는 진지하게 달리기를 배운 그 해에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 서브3를 이뤘다. 첫 풀코스, 첫 서브3를 동시에 달성한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분명 또 있기는 할텐데, 나는 이런 사람을 이날 처음 봤다. 그래서 많이 놀랐다. 그러니까 그는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3,5km 코스를 5분 40초 페이스로 달리는 게 크게 대수롭지 않은 사람이다. 무턱대고 달리면서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한 게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더 빨리 달려야지 땀을 흘리지’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좋은 기록은 낸 저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좋은 피지컬을 가지고 태어났다’라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진 않아요. 저는 하나에 빠지면 그 분야에 파고들어요. 공부를 많이 하죠. 감독님이나 주변 선수들에게 조언을 많이 얻었고요. <러너스월드> 영문판도 자주 들여다봤어요. 타고난 소질이 있긴 있죠. 잘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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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하가 쓰는 카메라 장비들. 후지(FUJI X-T1)와 니콘(Nikon D5)을 주로 쓴다.


‘포기하지 않는 성격’은 분명 타고난 소질일 수 있다. 4분 초반 페이스로 꾸준히 3시간 동안 달리는 건 굉장히 고된 일이다. 직장 생활로 치면 한달 동안 평균 4시간을 자면서 야근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면서 ‘회사 그만둘래!’라는 말을 마음속으로만 수백, 수천 번 외쳤다가 결국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안으로 꾹꾹 눌러 담는 것과 매우 흡사한 행위인 것이다! 물질적인 보상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서브3 달성에 필요한 멘탈은 보통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갖추기가 힘든 것이니 그는 분명 마라토너의 기질을 타고난 것이다.
한편으로 그는 자기 자신한테 절대 지지 않겠다고 굳건한 맹세를 한 사람처럼 보였다. ‘강한 사람’이 되는 게 목표인데, 그가 정의한 강한 사람은 이렇다.

“저는 마라톤을 하면서 나약하거나 나태한 제 자신을 봐요. 그걸 그대로 놔두는 게 불편해요. 스스로가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달리기를 하는 것 같아요. 강해지고 싶어요.”
“그럼, 지금도 본인이 나태하다고 생각하나요?”
“네. 지금보다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부지런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시간을 잘 쓰고 부지런하면 누구나 강한 사람이겠군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쓰고 부지런한 사람은 자신이 세운 원칙을 철저하게 따르는 사람이에요. 편한 것, 게을러지는 것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죠. 제 아버지가 그렇게 살아오셨어요. 아버지에게 그런 점을 잘 물려받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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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하는 마라톤을 하고부터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긍정적이고 밝아진 게 가장 큰 변화인데, 아무래도 그는 달리기로 프리랜서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뭣 때문에 힘드냐”라고 물었을 때 “불확실한 미래”라고 답한 걸 보면 그렇다. 달리기를 할 때의 ‘힘듦’과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힘듦’은 분명 다른 성질의 ‘힘듦’일 테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단한 건 같을 텐데, 어째서 달리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부쳐야 하는 달리기는 힘들다고 하지 않을까? 그에겐 그럴 만하다. 마라톤을 통해서 어수하는 많은 걸 얻었으니까. 달리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꼈고, 마라톤을 통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으니까.

그래서 어수하에게 마라톤은 일종의 종교일지도 모른다. 늘 자신을 채찍질하는 건 신앙생활의 일부분일 거고. 요즘 어수하는 아내와 함께 베를린 마라톤에 나가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둘이서 세계 6대 마라톤을 모두 완주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지금 그는 많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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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하의 ‘리복 포에버 플로트라이드 에너지’
“플로트라이드에 큰 기대는 없었어요. 그런데 신어보니까 첫 느낌이 굉장히 좋았어요. ‘뭐지? 이 신발?!’ 지면을 박차고 달리는 순간에 반전 매력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안정성, 쿠셔닝, 반발력 그리고 접지력까지! 각 능력치의 밸런스가 잘 잡힌 신발 같아요. 훈련용에서 레이스까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제품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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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by 윤성중

<러너스월드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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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월드 코리아> 2019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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