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전 경주 최강, 제천시청 육상팀

기사작성 : 2018-12-18 15:04

"지지 말자"와 "또 이기자"의 사이,
제천시청 육상팀은 조용히 강해졌다.

본문


역전 마라톤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열리는 독특한 장거리 육상 종목입니다. 일명 '장거리 릴레이 경주'인데요, 일본에서는 매년 초에 열리는 ‘하코네 역전 경주’가 유명하죠. 여기에 출전한 일본 관동 지방에 있는 대학교 육상부 선수들은 도쿄와 하코네 간 왕복 271.1km를 달립니다. 2018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 가와우치 유키도 ‘하코네 역전 경주’에 출전했던 경력이 있죠.

한국 최초의 역전 마라톤은 1923년 6월 3일에 열린 ‘경인 역전 경주 대회’입니다. 인천과 서울을 잇는 경인선 철도가 개통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죠. 이후 한국에서 역전 마라톤은 간헐적으로 열리다가 1955년 부산에서 서울까지 달리는 역전 마라톤이 시작됐습니다. ‘부산-서울 간 대 역전 경주 대회’는 2016년까지 62년간 진행됐어요. 그러나 작년부터 개최 일정이 없어 대회 유지가 불투명해진 상태입니다.

충청북도 팀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부산-서울 간 대 역전 경주 대회’ 10연패를 달성한 실력 있는 팀이에요. 그래서일까요? 충청북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내 시. 도 대항 역전 마라톤 경기를 지금도 개최하고 있죠. 올해 상반기에는 ‘도지사기차지 시. 군 대항 역전 마라톤 대회’가 열렸고, 하반기에는 ‘충청북도 시. 군 대항 역전 마라톤 대회’가 개최됐어요. 현재 여기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역전경주 팀이 바로 제천시청 육상팀입니다. 한번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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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선수들은 정밀하게 조정된 기계입니다. 그들은 훈련을 통해 몸에 새겨진 페이스대로 달리죠. 마라톤에 출전해도 목표로 삼은 시간에 맞춘 페이스대로 달립니다. 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죠. 그러나 역전 마라톤은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선수들은 오버페이스를 경계하면서도 맡은 구간에서 전력으로 달려야 합니다.

“내가 안일한 마음으로 달리면 다음 선수가 힘들어져요. 1초라도 벌어줘야죠.” 조용원 선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천시청 육상팀 선수들은 역전 마라톤 경기 동안 한 발자국이라도 더 빠르게 내딛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다음 주자에게 자신이 차고 있는 어깨띠를 전달해야만 했으니까요.

지난 4월 열린 제29회 도지사기차지 시. 군대항 역전마라톤대회 코스 거리표. 국내에서 열리는 역전마라톤은 선수 한 명이 1소구를 맡아서 달리는 방식이다. 그래서 경기 첫날에는 14명의 선수가 출전하며 경기 이튿날과 마지막 날에는 각각 15명, 14명의 선수가 릴레이를 벌인다.

‘제천시 대표팀’은 올해 열린 ‘제29회 도지사기차지 시.군 대항 역전 마라톤 대회’(이하 도내 역전 경기)에서 우승했습니다. 2017년에 이어 2연패였죠. 역전 마라톤을 쉽게 설명하면 장거리 릴레이 경주입니다. 선수들은 4km부터 10km까지 자기가 맡은 구간을 달려야 하죠. 이 경기는 이틀에서 사흘에 걸쳐 열려요. 지난 ‘도내 역전 경기’에는 총 10팀이 참가했어요. 각 팀은 3일간 총 15명의 선수를 출전시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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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이어 달린 거리는 도합 280.9km예요. 첫째 날과 마지막 날에는 14명의 선수가 각 구간을 달렸고 둘째 날은 15명의 선수가 이어 달렸어요. 대회에서 우승한 제천시 대표팀은 제천시청 육상팀 선수 8명과 제천 시내 학교의 육상부 학생 7명으로 이뤄져 있어요. 이 중에서 이번 역전 경주에 참가한 제천시청 육상팀 선수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태우, 허장규, 강성용, 박요한, 조용원, 최경선, 김규태, 강예진.


우승 멤버
제천시청 육상팀에는 작년 우승 멤버가 모두 남아있습니다. 선수들은 하나같이 ‘지금 팀 동료들과 합이 잘 맞는다’고 말해요. 작년 도내 역전 경기는 선수들끼리의 합을 확인하는 대회였죠. 그래서 올해는 이미 선수들 사이에 신뢰가 두터웠죠. 작년, 경기에 나서기 전 선수들은 “지지 말자"라고 서로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어요. “첫날 잘 뛰면 또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이 있었죠.

팀 내 최고참 선수이자 플레잉 코치를 맡고 있는 이태우 선수는 선수들이 바뀌지 않은 게 올해 우승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역전 마라톤에서는 경험이 정말 중요해요. 작년에 코스를 뛴 경험이 있고 서로 어떻게 달렸는지 알고 있어요. 그래서 올해는 선수들 스스로 세밀하게 전략을 세울 수 있었어요.”

이들의 전략은 우선 난이도가 높은 구간에 기복이 적은 선수를 배치하는 거죠. 최경선 선수와 박요한 선수가 힘든 구간을 맡았고요. 최경선 선수는 올해 ‘서울 국제 마라톤 대회 겸 제89회 동아마라톤’에서 국내 여자부 2위를 차지했어요. 경기가 끝나고 2주 뒤에 도내 역전 경기에 참가했죠. 그녀는 팀의 막내인 강예진 선수와 함께 경기를 잘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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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한 선수는 팀원들에게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팀에서 보기에는 우리가 강해졌다고 느낄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팀은 여유가 있었어요.” 제천시청에는 부상 때문에 훈련량이 부족한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학교 육상부 선수들은 실업팀 선수들에 비해 긴장을 많이 하므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요. 하지만 선수들은 사흘 내내 서로를 믿고 달렸습니다.

“우리 팀 선수들이 앞에서 잘 달려준 덕분에 부담 없이 뛰었어요.” 김규태 선수는 3일째 마지막 14소구를 달렸습니다. “마지막 주자였기 때문에 1등으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잖아요. 그런데 잘 안됐죠. 부상 때문에 대회를 앞두고 2주 밖에 훈련을 못했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짧은 구간을 맡았죠. 부담을 던 상태에서 달릴 수 있어 동료들에게 더 고마웠어요.” 제천시 대표팀의 최종 기록은 ‘17시간 7분 27초’였다. 2위와 5분 8초 차, 2km에 가까운 차이를 벌린 셈이었습니다.

무조건 가야해요. 전력으로 달려서 다음 주자에게 1초라도 벌어줘야죠.


전력 질주
“다음 소구까지 무조건 가야 해요.” 선수들은 결연했습니다. 도내 역전 경기에 출전하면 선수들은 다양한 감정을 겪어요. 주로 위에서 그들의 감정은 부담감, 익숙함, 책임감, 설렘이 교차하죠. 선수들은 자신의 기록이 떨어지는 것보다 팀 등수가 떨어지는 게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경기를 치르는 동안에는 무조건 달려야 했어요. 체력이 떨어지고 통증이 있더라도 다음 주자에게 1초라도 더 벌어주기 위해 전력으로 질주해야 하죠.

“다른 시합에 비해 더 무리해서 달리는 건 사실이에요. 책임감 때문에 더 치열하게 달리죠.” 박요한 선수는 담담했습니다. “역전 경기에 자주 나가다 보니까 긴장은 안 해요. 아, 고등학생 때 코오롱 구간 마라톤 대회에 나갔을 때는 엄청 떨렸어요. 항상 제 실력대로 못 뛰고 왔어요.” 이랬던 박요한 선수는 팀의 구심점으로 성장했습니다.

전략
역전 마라톤은 전략을 잘 짜는 게 중요합니다. 선수들의 체력 안배와 구간 배치가 승패를 가르죠. 경기가 사흘간 이어지기 때문에 선수들이 고르게 잘 달릴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조용원 선수는 팀의 전략을 한 마디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날 기록을 잘 내는 게 목표였어요.” 그가 말을 이었습니다. “만약 첫째 날 기록이 나쁘면 둘째 날 무리할 수밖에 없어요. 반드시 앞 주자를 추월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첫날 기록이 좋으면 다음날 반드시 주자를 앞지를 필요가 없죠. 비슷하게 따라붙기만 해도 충분해요. 첫째 날 기록이 안 나오면, 둘째 날 차이를 줄이기 힘들어요. 그러면 셋째 날에는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더 빠르게 달려야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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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은 보통 첫째 날 몸이 제일 가볍고 경기가 진행될수록 체력이 떨어지죠. 하지만 어떤 선수들은 첫째 날 컨디션이 안 좋다가도 달리면서 점점 몸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감독과 코치가 선수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달릴 구간을 알맞게 나눌 수 있어요. 평소 훈련량, 실력, 몸 상태를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하죠. 이태우 선수는 제천시청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플레잉 코치를 겸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같이 생활하기 때문에 선수들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역전 경주의 담당 코치와 감독은 어느 구간에 어떤 선수를 배치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코치진과 선수들은 이런 과정을 ‘오더 싸움’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기복이 없는 선수를 난이도가 높은 구간에 배치하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각 팀의 에이스들이 어려운 구간에서 경쟁하게 되죠. 올해 제천시청 팀의 에이스는 최경선과 박요한 선수였습니다. 에이스끼리 대결하는 구간에서는 초 단위 싸움이 이뤄집니다. 이 대결에서 밀리면 순위가 뒤바뀔 수도 있죠.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3일차 기록을 보면, 5소구(7.3km)에서 1위는 괴산군 대표팀의 이광석 선수였습니다. 그는 24분 52초를 기록하며 구간을 끊었어요. 박요한 선수는 5초 뒤인 24분 57초에 들어왔습니다. 3등과는 19초 차이밖에 나지 않았죠. 여성 선수들만 달리는 구간이었던 7소구(4.0km)에서 1위를 한 청주시 대표팀 소속 조하림 선수와 2위 최경선 선수와 기록 차이는 3초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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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 군 대표 팀과 달리 제천시 대표팀에서는 플레잉 코치를 맡고 있는 이태우 선수가 3일 내내 1주자로 뛰었습니다. 둘째 날 그는 구간 1위로 들어왔죠. 1구간에 일부러 베테랑인 자신을 배치한 것인지 물었습니다. “제가 3일 내내 1주자로 뛴 건 팀의 사정 때문이에요. 지금 우리 팀에는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없기 때문에 에스코트를 해줄 선수가 저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1주자로 달리고 난 뒤에 다음 주자들 페이스를 잡아줬어요.”

각 시. 군 대표팀에는 중학교 육상부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앞 선수 혹은 다음 선수가 학생 선수이면 불안하지 않을까? 실제로 3일째 막바지에 이르러 학생부 선수의 기록이 떨어졌어요. “앞 주자가 뒤처지면 불안하고 부담도 커져요. 하지만 학생부 후배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해요. 실업팀 선배들과 같이 뛰는 게 부담이 크죠.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얼마나 힘들게 운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 애잔하기도 해요.” 강성용 선수는 도내 역전 경기를 통해 후배들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도내 역전 경기에서는 오직 실업팀 선수들끼리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 사이에 학교 육상부 학생들도 같이 달리며 어깨띠를 메죠. 역전 경주는 실업팀에서 뛰고 있는 선배들과 학교 육상부에서 운동하는 후배들이 2박 3일 동안 같이 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죠.

선수들
현재 제천시청 육상팀 감독은 공석입니다. 팀을 이끌고 있는 것은 제천시청 직장운동경기부를 담당하고 있는 조병현 주무관과 팀 내 최고참인 이태우 선수입니다. 감독의 업무를 두 사람이 나눠서 하고 있죠. 조병현 주무관은 물심양면으로 육상팀을 지원하고 있어요. 이태우 선수는 자기 운동을 하면서 후배들 훈련을 챙기고 있죠.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지만 동료들은 이태우 선수를 중심으로 단단히 뭉쳐있습니다. “시즌 중이라서 감독님을 새로 영입하기보다 지금 이대로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조병현 주무관은 선수들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선수들은 오히려 감독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어요. 도내 역전 경기에서도 이를 악물고 뛰었습니다. 작년에는 잘했는데 올해에는 감독이 없어서 못했다는 평가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실업팀에 입단한 선수들은 스스로 운동합니다. 감독이나 코치가 시켜서 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스스로 부족한 점을 찾고 극복하고 있죠. 그때 누구보다 곁에 있는 동료, 후배, 선배들이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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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예진 선수는 선배 최경선 선수에게 의지면서도 그녀를 뛰어넘기 위해 매일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훈련을 합니다. 김규태 선수는 부상에서 회복하고 전국체전에 나가 800m, 1500m 종목 입상을 노리고 있죠. 강성용 선수는 최근 큰 부상에서 회복했어요. 올해는 입상보다 기록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하고 있죠. 조용원 선수는 입대 전까지 전성기를 되찾기 위해 남은 시간을 투자할 예정이고요. 박요한 선수는 어느 해보다 컨디션이 좋고 몸이 잘 올라왔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5000m, 10000m 트랙 종목에 도전했죠. 이태우 선수는 운동을 병행하며 후배들을 키우기 위해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이들의 내년 활약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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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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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by 차영우

<러너스월드 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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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월드 코리아> 201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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